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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들의 ‘엄청난 식도락 이야기’

한국국학진흥원, ‘양반의 식도락’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2월호 발행
박재영 기자 / pksun218@panran.com입력 : 2019년 02월 14일
↑↑ <계암일록>의 저자 김령이 조부인 김유(金綏, 1491~1555)와 함께 쓴 요리책 <수운잡방(需雲雜方)>
↑↑ <수운잡방(需雲雜方)>에 나온 두부 조리법을 재현한 모습(출처 <수운잡방>, 글항아리)
↑↑ 숯불을 피운 화로 곁에 둘러앉아 고기를 먹는 모습을 그린 19세기 화가 성협의 ‘고기굽기’(출처 국립중앙박물관)
↑↑ 산 속의 연포회와 승려들의 불만 (그림=정용연)
식사는 하루 다섯 끼, 두부는 최고의 별미… 하인들, 하루종일 준비
경제력 좋은 조선 양반들, 산해진미 즐기고 제철 먹거리 찾아다녀
때·장소 가리지 않은 식탐에 폐단 잇따라… 현대 식문화 콘텐츠 재조명


[경안일보=박재영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은 기해년 설날을 앞두고 ‘양반의 식도락’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2월호를 발행했다. ‘양반의 식도락’은 설날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설음식을 장만해 조상에 차례를 지내고 서로 덕담을 건네며 함께 나누어 먹는 우리 전통의 음식문화를 살펴보자는 취지로 2월 주제로 삼았다.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적인 환경과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산과 평야가 어우러진 지리적 환경 덕분에 우리나라 먹거리는 예로부터 다양하고 풍성했다. 특히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던 조선시대 양반들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찾고 즐겼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보통 하루에 5끼를 먹었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한 죽 같은 것을 먹고 아침 10시쯤 정식 아침밥을 먹고, 그리고 정오와 오후 1시 사이 국수 같은 가벼운 점심을 먹었다.
오후 5시쯤 제일 화려한 저녁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기 전 간식 같은 가벼운 음식을 먹었다.
양반들의 식탁에는 기본 밥과 국, 육류, 생선류, 탕, 찌개, 전, 구이, 나물류, 김치류 등이 다채롭게 차려졌다.
하인들이 다섯 끼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동트기 전 이른 새벽부터 깜깜한 밤에 이르기까지 꼬박 수고를 쏟아야 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즐겼던 최고의 별미 ‘두부’, 절에서 스님들이 만든 두부 먹는 모임 ‘연포회’ 큰 인기
한반도에서 콩은 벼보다도 먼저 재배되기 시작했다. <삼국지위지동이전>에는 고구려인들이 장을 잘 담근다는 기록이 발견되고 있다. 두부(豆腐)는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고려 말 원나라에서 두부 제조법이 전해졌다. 이후 우리 선현들의 두부에 대한 애정은 매우 특별했다.
고려 말 목은 이색(李穡)은 두부를 소재로 많은 시를 남겼고 조선시대 선비들 또한 두부에 대한 많은 기록을 남겼다. 두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계암일록>의 저자 김령 또한 두부에 대한 기록을 많이 남겼다. 그 중 하나는 할아버지 김유와 함께 저술한 한문 요리책<수운잡방>이다. 김령은 이 책에서 두부 조리법을 상세히 기술했다.
김령은 연포회(軟泡會)에 대한 기록도 일기를 통해 상세히 남겼다. 1603년 9월 28일 김령은 왕릉에서 쓰는 제사용 두부를 만드는 사찰인 조포사(造泡寺) 중의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명암사’에 가서 연포회(軟泡會)를 연다. 김령이 벗들과 함께한 연포회는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절에 가서 스님들이 요리한 따끈한 연두부탕을 함께 먹으며,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시를 읊조리는 즐거운 모임이었다.

△별미에 대한 지나친 탐닉도 과유불급, 수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다 영조에 의해 연포회 금지령
큰 인기를 끌었던 연포회는 점차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16세기만 해도 연포회는 담백한 음식인 소식(素食)을 먹는 선비들이 산사에서 학문을 논하는 일종의 워크숍이었다. 새우젓으로만 간을 했다. 이후 연포회가 크게 유행하게 되면서 닭을 재료로 썼다. 사찰의 승려들이 살생을 할 수 없어 연포회에 참석한 젊은 선비들이 닭을 잡는 상황도 벌어졌다.
연포회를 빙자해 업무를 방기한 채 산사나 능원에서 며칠씩 노는 관리들이 있어 조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찰의 승려들 입장에서는 놀고먹는 선비들을 위해 연포탕 끓이는 일이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조극선(趙克善, 1595~1658)의 <인재일록(忍齋日錄)>에는 사찰의 승려들이 두부 만들기를 거부해 연포회가 열리지 못할 뻔한 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7세기 후반이 되면서 사적 결사 모임인 계를 조직하고 세력을 모으려는 파벌의 우두머리들이 생겨났다. 그 결과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쇠고기가 연포회 국물에 들어갔다. 사찰의 승려들을 겁박해 연포탕을 끓이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마침내 1754년 음력 윤달 4월 7일, 영조는 신하들과 사찰의 연포회 문제를 거론하면서 폐단을 없애야 한다는 지시를 내리기에 이른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식도락 문화에 대한 다양한 기록, 우리 전통 음식을 소재로 하는 글로벌 콘텐츠로 탄생하길
평소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고 별미는 벗들과 함께 모여서 즐겼던 조선시대 양반들의 식도락 문화에 대한 기록은 다양하게 남아 있다. 두부를 함께 모여서 먹는 ‘연포회’ 외에도 함께 모여서 고기를 구워 먹는 모임을 ‘난로회’라고 불렀다. 중국에서 들어온 ‘난로회’의 풍속은 조선 후기에 급속도로 퍼져 심지어 궐 안에서 임금과 신하가 함께 고기를 구워먹었다는 기록도 남겨져 있을 정도다.
양반들의 식도락 문화를 둘러싼 생생한 기록들은 일상생활에 대한 꼼꼼한 기록을 남긴 선인들의 ‘일기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한 4천872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돼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해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다.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이번 달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는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적인 여유를 가진 양반들이었기에 즐길 수 있었던 식도락 문화였고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당대에도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를 아울러서 볼 때, 상세한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양반들의 식도락 문화는 세계인의 입맛을 다시게 하는 역사콘텐츠 창작의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pksun213@gailbo.com


박재영 기자 / pksun218@panran.com입력 : 2019년 0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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