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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조보’를 아시나요”

한국국학진흥원, 기해년 새해를 맞아
‘조보-조정의 기별’ 소재로 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1월호 발행

박재영 기자 / pksun218@panran.com입력 : 2019년 01월 10일
↑↑ MBC드라마 <화정> 중에서 조보소에서 조보를 발간하는 장면 (출처= 드라마 <화정> 화면 캡쳐)
↑↑ 조선 후기 노명흠이 저술한 한문단편집 ‘동패낙송(東稗洛誦)’ (출처=한국민족대백과사전)
↑↑ 경북 유형문화재 제521호로 지정된 세계 최초 일간신문 ‘민간조보’ (출처= 영천시)
[경안일보=박재영 기자]한국국학진흥원은 2019년 기해년 새해를 맞아 ‘조보-조정의 기별’을 소재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1월호를 발행했다.
조보를 통해 조정에서 들려오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선인들의 마음과 같이 새해에는 더욱 긴밀하고 폭 넓은 소통이 이루어지고 나라 안팎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아 1월의 주제로 삼았다.
조선시대 조보(朝報)는 매일 아침 왕과 신하들의 회의가 끝나고 나면 승정원의 관리가 ‘조보소(조방)’에서 그날의 주요 소식을 전했다.
각 관청에서 나온 ‘기별서리’는 구두로 전달하는 내용을 종이에 옮겨 조보를 만들었다. 한양에 있는 양반들은 매일 아침 조보를 받았다.
지방의 관리나 양반은 5~10일 정도 걸렸다. 당시의 어려운 교통환경을 생각해본다면 조보발행에 상당히 많은 자원을 투자했음을 알 수 있다.
조보를 통해 중앙과 지방이 긴밀히 소통하고자 하는 의도였다.
조보라는 용어는 조선왕조실록 1508년 3월 14일 중종실록 5권에 처음 나타나지만 1515년에 중종이 ‘조보는 예로부터 있는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조보의 기원은 그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별(奇別)은 조보의 다른 이름으로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라는 속담에 쓰이기도 했다.

△민간조보의 발견으로 세계최초의 일간신문 입증, 알 권리를 위한 일반 백성들의 갈망 담긴 민간조보
중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조보는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물이 보존되지 않아 1650년 독일에서 발행된 ‘아이코멘데 차이퉁’이 그동안 세계 최초의 일간신문으로 알려져 왔다.
2017년 4월 영천에서 선조 10년(1577) 활판인쇄로 발행된 민간조보의 실물이 발견됐다.
아이코멘데 차이퉁보다 83년이나 앞선 일간신문이다.
올해 1월 2일 민간조보는 경북도 유형문화재 제521호로 지정됐다.
민간조보가 탄생하게 된 것은 왕과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조보에 대한 일반 백성들의 갈망을 배경으로 한다.
일반 백성들은 조보를 읽을 수가 없었지만, 알 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1577년 민간조보를 탄생시켰다.
조보는 손으로 쓰였지만 민간조보는 활판으로 인쇄됐다. 일반 백성들은 돈을 주고 구독했다.
그러나 민간조보는 관의 허락을 받았으나, 발간된 지 3개월 만에 선조에 의해 폐간됐다. 조보 발행인들은 가혹한 형벌과 유배에 처해졌다. 민간조보가 유통된 일에 대해 선조가 크게 노했다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18세기 한문소설 <조보>에 담긴 민중들의 갈망, 기생출신 첩이 조보를 활용해 남편을 병마절도사로 만들다
조보가 무엇이길래 그토록 읽고 싶은 갈망을 불러일으켰을까?
이번 웹진 1월호 필진으로 참여한 노병성 교수(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는 18세기 한문단편집인 ‘동패낙송’에 실린 소설 ‘조보’를 통해 흥미로운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가난한 무관 우하형은 문자를 아는 기생출신 수급비(물 긷는 여종) 궐녀를 만나게 되는데, 궐녀는 우하형이 병마절도사가 될 상이라 생각해 경제적인 지원을 했다.
조보를 통해 우하형의 소식을 수소문하며, 평안도 한 고을의 수령으로 부임한 우하형을 찾아가 관아 안살림을 관리한다. 이후에도 조보를 계속 읽음으로써 조정의 정세를 파악했다.
이러한 정보를 기반으로 뒷바라지를 한 결과 우하형이 마침내 병마절도사로 승진하게 된다는 내용으로 한문을 읽을 줄 아는 기생출신 첩이 조보를 활용해 조정에 영향을 끼쳐 남편을 병마절도사로 만드는 이야기는 접근이 차단된 정보에 대한 백성들의 갈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조보의 내용은 오늘날 정치면이나 사회면과 비슷, 조보를 쓰려면 뛰어난 문장력과 속필능력을 갖추어야
소설 ‘조보’의 주인공 궐녀가 조보를 통해 조정의 정세를 파악했다는 이야기처럼, 조보의 내용은 대체로 관리의 임면, 이동, 승진 등 인사동정 기사가 가장 많았다.
국왕의 동정 기사, 날씨 기상 천문에 관계된 기사, 사망기사, 개명기사, 농사기사, 범죄기사, 문안 기사, 과거 기사, 건강기사, 자연재해 및 역병기사, 외국동정기사 등이 실렸다. 대체로 오늘날 정치면과 유사하며, 아울러 사회면과 거의 흡사한 측면이 있다.
조보는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승정원에서 매일 발행했으며, 전쟁 중에도 발행됐다.
승정원에는 기자 역할을 하는 ‘주서’가 있어서 도승지의 감독 아래 매일 조보를 작성했다.
여러 가지 기사 중에서 취사선택을 해야 했으며, 빠른 속도로 알아보기 쉽게 글씨를 써야 했다.
조보에 기사가 실리는지 빠지는지, 어떤 내용으로 실리는지 등은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예나 지금이나 매우 민감한 사안이라 많은 공격을 받기도 했다. 글씨가 졸필이며 알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소를 받기도 했다.
또 조보에도 보도지침이 있어서 군사기밀이나 비밀을 요하는 내용에 대해서는 조보에 내지 않도록 했다.
이런 원칙을 어겨서 벌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새해 첫날 조보를 통해 파직 소식을 전해 듣기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음에 한탄과 분개를 표현하기도
조보를 받아서 읽는 독자들의 생각과 의견은 어떠할까?
선인들의 일기에서 이와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볼 수 있다.
16세기에 쓰여진 초간일기의 저자 권문해는 공주목사로 근무하던 1582년 1월 3일 새해 첫 조보를 통해 본인의 파직 소식을 듣게 된다.
죄수가 탈옥한 일로 인해 파직된 것이다. 권문해는 공무수행에 완전하지 못해 파직을 당한 것은 부끄러운 바가 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 독서와 교유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하니, 새로운 기대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적고 있다.
‘쇄미록’의 저자 오희문은 임진왜란으로 궁핍한 삶을 살던 중 우연히 조보에서 아들 윤겸이 수령으로 추천됐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기쁨을 표시하고 있다.
‘계암일록’의 저자 김령은 조보를 받고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라 조정의 소식에 제대로 닿지 않는 것을 한탄하며, 나라의 안보와 관련한 중대한 일이 조보에 담기지 않았음을 분개하고 있다.

△조보를 통해 소통했던 선인들의 모습에서 창작소재 발굴,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동체를 위한 노력 필요
중앙과 지방의 거리는 소통이 더뎌질수록 멀어지게 마련이다.
세계최초의 일간신문인 조보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고자 노력했던 선인들의 모습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더욱이 왕과 사대부들의 전유물이었던 조보에 대한 알 권리를 주장하며 민간조보를 찍어냈던 민중들의 몸짓 역시 소통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큰 것인지 깨닫게 한다.
조보를 둘러싼 생생한 기록들은 고향이나 임지에서 조보를 통해 조정 소식을 듣고 있는 선인들의 ‘일기류’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스토리테마파크(http:// story.ugyo.net)에는 조선시대 일기류 244권을 기반으로 4천872건의 창작소재가 구축돼 검색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매월 한 가지의 주제를 선정해 웹진 담(談)을 발행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일기류를 소재로 하지만 주제의 선정은 지금의 일상과 늘 맞닿아 있다.
공병훈 교수(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는 “소통은 결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며 소통은 개인들을 연결하고 공동체를 형성해 살아 움직이게 한다”라면서 “조보를 통해 소통했던 선인들의 모습에서 참신한 창작소재 발굴을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박재영 기자 ga7799@gailbo.com



박재영 기자 / pksun218@panran.com입력 : 2019년 0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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