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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이야기


홈페이지 관리자 기자 / fdasf입력 : 2021년 01월 24일
↑↑ 신동환- 칼럼니스트 (경북도경산교육청교육장 역임, 영남대학교 외래교수)
산골에서 태어난 덕분에 유년기의 놀이터는 동네 뒷산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산타기도하고 전쟁놀이도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그때 산을 같이 뛰어 다니던 친구들은 이 세상을 하직하기도 하였고, 먹고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주소도 모르는 친구도 있다.
처음으로 산다운 산을 오른 것은 62년도에 선친과 함께한 문수산(1,206m) 이다. 어렸을 때 일이라 망각의 시간 속에 몇 조각의 편린들만 가끔 떠오른다. 그 해에 화폐개혁이 단행 되었다. 하필 그날 고향 물야 수식에 가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춘양 서벽으로 가야했다. 선친에게는 구 화폐만 몇 푼 있었다. 봉화에 가서 차표를 살 새 돈이 없었다.
“우리 이 돈으로 맛있는 것 사가지고 걸어갈래?”
선친이 나를 보고 웃었다. 마을에는 아직도 구 화폐를 받아주는 동네 구멍가게가 있었다. 맛있는 과자를 한보따리 샀다. 그리고 무척 많이 걸었고 힘들었다. 어디로 어느 길로 걸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은 내 생에 처음으로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은 것, 물야 개단에 있는 고모 집에 들렀고, 천년이 넘는 오래된 절이 있었고, 절 뒤의 굉장히 높은 산을 힘겹게 넘었다는 것이다. 지금 지도를 가지고 유추해보면 축서사 뒤 문수산을 넘어 서벽으로 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선친과 함께한 산행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었다.
내가 잊을 수 없는 산행은 한라산 겨울 등산이다. 한라산은 절친한 동생 내외와 진작 정복하였지만 겨울 한라는 별달랐다.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제주도엔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공항에 내렸다.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이튿날 한라산 입산 통제가 풀렸다. 길옆의 나무들이 눈꽃을 피웠다. 일행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버스를 중간 중간 주차시켰다. 눈 나라는 우리의 모델이 되었다. 출발지 ‘영실’에서부터 눈은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발목이 푹푹 빠지고, 길은 가팔랐지만, 온 천지간의 하얀 눈꽃들은 힘듦을 잊게 하였다.
한라산 절경의 하나라는 영실기암의 병풍바위에서 눈 쌓인 동양화를 보았다. 산이 높아질수록 상고대와 눈꽃이 서로 엉켜 붙어 햇살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작은 나무들과 눈꽃은 동화 속 터널을 만들어 엉금엉금 기어가게 하였다. 해발 1700m ‘윗세 오름’에 도착했다. 백록담이 눈 안에 들어왔다. 설원속의 백록담에 취해 일행은 렌즈 앞에서 공중 부양을 하였다. ‘백록담은 내 것이다!’ 우리가 소리친 울림은 백록담으로 달려갔다.
오랜 날이 지난 뒤에도 한라산 설경을 그리워 할 것 같다.
우리 봉화에는 산이 많다. 구룡산(1,346m) 청옥산(1,277m) 선달산(1,236m)등 해발 1000m가 넘는 높은 봉우리 들이 군내 곳곳에 솟아 경상북도 제1의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다. 이런 산악지대를 잘 개발만하면 우리 군민의 삶의 질과 행복도가 높아질 것이다.
산악지대를 잘 개발해서 성공한 나라가 스위스이다.
스위스 최고 관광지 융프라우는 사람들이 갈 수 없는 설산이었다. 1896년에 암반에 터널을 뚫고, 기차 철로를 깔아, 해발 3454미터에 유럽 최고 높은 철도역을 만들었고 케이블카를 설치하였다. 전문등산가가 아니면 밟아보지도 못했을 융프라우 전망대를 유럽 최고 관광지로 만든 것이다. 거기다 ‘007영화 촬영지’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사시사철 관광객이 북적이게 하였다.
유럽 곳곳에 용병을 파견하며 살던 유럽의 약소국 스위스가, 백두산 보다 훨씬 높은 곳에 암벽을 뚫어 철도를 놓을 때 우리 조선(朝鮮)은 무엇을 하였을까? 고종 임금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간 아관파천이 있었고, 우리의 능력 이 없어, 미국과 일본이 서울-인천 철도를 건설하여 이권을 가져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산악개발이 만만하지 않다.
강원도 양양군에서 2012년부터 추진하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아직도 결정이 나지 않고 있고, 대구시 에서 2015년부터 추진하던 ‘팔공산 구름다리’ 설치 계획이 환경 단체와 종교 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것이 좋은 예다.
우리는 우리의 후손을 위해 자연 환경을 보존, 보전하여야 한다. 또 졸속 계획의 정부의 밀어붙이기 사업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조건 자연 환경 보존이라는 명분으로 사사건건 반대하는 것도 좋지 않다.
산악개발을 하려면, 스위스처럼 기본계획과 예산은 연방 정부에서 맡고, 운영과 관리는 주정부에서 책임지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자연 개발 종합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관계 단체의 환경 보존과 일반 시민의 개발 욕구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급선무이다.


홈페이지 관리자 기자 / fdasf입력 : 2021년 0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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