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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4 - <도시와 건축>


홈페이지 관리자 기자 / fdasf입력 : 2020년 09월 13일
↑↑ 반병목- 경안일보 사장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에서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우리는 분열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갖가지 잣대와 경계로 나뉘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에 각자 둘러싸인 듯 산다.
다행이도 이러한 고립과 양극화, 불평등과 분열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계획의 문제이기 때문에, 공동의 장소, 즉 필수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장소들을 바탕으로 민주사회의 미래가 세워질 수 있으므로, 찾아가고 머물며 집단 간 경계를 넘어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강화해줄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 한다.
고립·범죄·교육·정치·환경 등 우리가 마주한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가 형성되어야 하는데, 튼튼한 사회적 인프라는 친구들이나 이웃들끼리 만나고 서로 지지하며 협력하기를 촉진하는 반면, 낙후한 사회적 인프라는 사회 활동을 저해하고 가족이나 개개인이 자기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든다.
학교나 놀이터 혹은 동네식당 등에서 벌어지는, 서로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이루어지는 지역적 교류가 곧 그들의 공공 생활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피해가 심한 곳은 대체로 사회적 인프라가 튼튼하지 않았다. 이웃 간에 교류가 없어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반면 피해가 심하지 않았던 곳은 대체로 사회적 인프라가 튼튼했다. 이웃 간에 교류가 활발하고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다 알아서 자연재해가 일어났을 때 신속한 구조 활동이 펼쳐졌다.
저자는 공공시설, 즉 도서관, 학교, 놀이터, 공원, 체육 시설, 수영장 등의 사회적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져야 해당 지역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어울리면서 공동체의 문화와 풍습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버려진 건물들을 관리만 잘 해도 폭력 사건이 줄어들고 카페나 녹지가 많을수록 범죄율이 낮아진다.
도서관에서 소규모 학습 공동체를 운영하거나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고 평생 교육률도 높아진다. 일예로 그네와 미끄럼틀 혹은 모래밭에서 보내는 시간도 곧 민주주의에 참여할 준비 과정이라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놀이터 활동을 연구하면서 거의 모든 부모들이 부차적이라고 여길 행동들에 주목했다.
아이들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에게 언제 그네를 넘겨줄지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는 듯 할 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낯선 사람을 놀이에 끼워줄 때에는 어떻게 행동하고, 어떨 때 선을 긋는가? 의견 충돌이나 다툼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는가? 와 같은 민주주의를 배운다는 것이다.
또 아파트 선호 문화가 이웃 간 단절을 부추기고 있다. 옛날 농촌 집보다 더 가까이 살면서도 전혀 교류가 없다. 옆집 사람이 죽은지가 몇 달이 지나도 냄새 때문에 알게 되고 엘리베이터를 타도 인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층간 소음갈등이 쉴 새 없이 일어난다. 그 이유는 집이 안식처가 아니기 때문이다. 투기의 대상이니 오래 살 수 없고 오래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고생 고생해서 천신민고 끝에 집을 샀는데도 즐겁기는커녕 마음이 편해지지 않더라는 것이다. 틈날 때마다 시세를 검색해 보며 오르는지 내리는지 끝없이 긴장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집은 휴식이 아니라 불편한 욕망이라고 표현했다.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승효상 선생은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얘기하기를, 오래 산 부부가 닮는 이유는 서로 달리 살던 사람들이 결혼하여 한 공간에 같이 살면서 그 공간의 규칙에 따르다 보면, 습관과 생각도 바뀌어서 결국 얼굴까지 닮게 된다는 것이다. 수도사들이 산간벽지의 암자나 수도원을 굳이 찾는 이유가 그 작고 검박한 공간이 자신을 번뇌에서 구제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 아닌가?. “건축에 시간의 때가 묻어 윤기가 날 때, 그때의 건축이 가장 아름답다. 처음에는 남루했어도, 거주인의 삶을 덧대어 인문의 향기가 배어나는 건축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경이롭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건축은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거주인의 시간과 더불어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코로나가 단절을 더욱 부추기고 있으니 걱정이다.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 가면서 어떻게 해야 끊어진 공동체를 이어갈 것인가? 우리가 원하는 세상,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상은 어떤 것인가를 건축문화에서부터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봄의 마음으로 겨울을 보면, 겨울은 춥고 비참하고 공허하며 어서 사라져야 할 계절이다. 그러나 조급해한들, 겨울은 겨울의 시간을 다 채우고서야 한동안 떠날 것이다. 고통이 그런 것처럼,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통 위에도 계절이 지나간다.”
답답한 마음에서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하는 마음으로 한정원 시인의 시를 담아본다.


홈페이지 관리자 기자 / fdasf입력 : 2020년 09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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