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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태사묘’의 역사 밝힌다”… 국학진흥원서 학술대회

21일, “삼태사와 지역사”주제
“사료 부족하지만 해결 기대”

박재영 기자 / pksun218@panran.com입력 : 2019년 05월 15일
↑↑ 태사묘(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사진=안동시 제공)
[경안일보=박재영 기자] 경북 안동시 태사묘(太師廟·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의 기원과 역사를 밝히는 학술대회가 오는 21일 한국국학진흥원 대강당에서 개최된다.
15일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안동의 삼태사와 지역사의 전개’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안동’이라는 지명이 있게 한 삼태사와 태사묘의 역사적 기원 및 전개 과정을 조명한다.
이종서 울산대 교수, 정재훈 경북대 교수, 정연상 안동대 교수, 김명자 경북대 박사, 김미영 한국국학진흥원 박사 등이 주제 발표한다.
김호종 안동대 명예교수, 한기문 경북대 교수, 김학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의 토론도 이어진다.
안동은 삼국통일 이전에는 고타야군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고창군으로 이름을 고쳤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해 고려를 건국하고 난 후 삼태사의 공로를 치하해 ‘동쪽을 편안하게 했다’라는 뜻의 ‘안동(安東)’이라는 지명을 내린 것이 오늘날에 이른다.
삼태사로 일컫는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은 삼국통일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고창전투에서 왕건의 편에서 공을 세웠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고려의 공신이 되기 이전에는 쇠약해진 신라 조정의 힘이 미치지 못했던 당시 고창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며 성주, 장군 등으로 불리던 지방 호족들이다.
학계는 고려 왕조 자체가 지역 호족 세력의 통합 국가적 성격이 강하므로 통일 과정에서 공을 세운 인물을 모시는 태사묘와 같은 사례가 전국적으로 존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현존하고 있는 것은 안동의 태사묘가 유일하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태사묘는 그 희소성이나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관리가 후손들의 손에 맡겨지다 보니 그 역사적 전개 과정을 알 수 있는 사료가 대부분 멸실된 탓에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 어렵다”며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학술대회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pksun213@gailbo.com


박재영 기자 / pksun218@panran.com입력 : 2019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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